그의 일상은 생각보다 바쁘게 흘러간다. 그가 회사에서 하는 일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회사 밖에서 저렇게 매일 바쁘니 회사에서 쓸 시간이 없는게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의 주말은 나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시작된다. 내가 합법적인 늦잠을 자는 동안 그는 운동도 다녀오고 장도 봐 오고 여기저기 볼일을 보러 집을 바쁘게 들락거렸다. 오늘 일정이라곤 지난주 내내 ...
퇴근길에 오늘 갓 나온 전세 매물이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급히 발걸음을 돌렸지만 별 수확은 없었다. 일을 마치고 지하철역으로 향하는데 전화가 울렸다. 한동안 연락이 뜸하던 대학 동기였다. 지금 시간 되면 얼굴 좀 보자는 목소리에 이미 한껏 흥이 올라 있다. 마침 두 정거장 거리라 오래 생각치 않고 가겠다 대답했다. 지하철에 오르고 나서야 도현을 생각했다....
"무슨 일 있어?" 그의 물음에, "민재랑 잤어요." 나는 대답했다. 그가 물끄러미 나를 본다. 어이가 없는건지, 화가 난 건지. 도통 그 눈빛을 읽을 수가 없다.
민재와 나 둘이 눕기엔 조금 작은 내 침대가 문득 볼품없게 느껴졌다. 방 안은 숨막힐 정도로 조용했고, 침대는 거슬리는 소음을 냈다. 어두운 방 안, 오고 가는 대화 없이 거친 숨소리와 살과 살이 마찰하는 소리만 간간히 들렸다. 어딘지 엉성했고 부끄러웠다. 이상하게 이 상황이 싫었고, 그 와중에 열에 달뜬 숨을 참는 내 자신이, 벌거벗은 초라함이 싫었다. ...
꽉 쥐고 있던 민재의 옷자락을 그제서야 손에서 놓았다. 나는 몸을 일으켜 앉았다. "왜 표정이 그래? 싫어?" "...싫어." 민재가 내 말에 고개를 갸웃거린다. "나 좋다며." 나는 힘을 실어 민재를 떠밀었다. 내 위에서 날 누르고 있던 민재는 순순히 물러난다. 나는 그제서야 있는대로 인상을 썼다. 분이 안 풀려서 그 어깨를 주먹으로 쳤다. 민재는 아픔을...
사무실의 불을 끄고 문을 잠그고 나와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열린 문 안에는 남자가 있었다. 나는 머뭇거리다 엘리베이터에 올라 탔다. 내가 고개 숙여 인사하는 것에 그가 눈인사로 답한다. 어색하다. 나는 괜히 차가운 버튼을 손끝으로 문지른다. "오늘은 기다린 거 아냐." 그의 말에 고갤 끄덕였다. "믿어 줄게요." 웃으라고 한 말인데 그는 웃지 않는다. "...
그가 나를 가볍게 안아 올리고 집 안으로 들어온다. 집 안의 공기가 따뜻했다. 나는 그에게 매달려 입을 맞추고, 그는 그런 나를 다시 침대가 있는 방으로 가 눕힌다. 그의 코트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입었다고 하기도 민망하게 내 몸에 걸쳐져 있던 셔츠를 다시 벗겨낸다. 내 상체 위에 그의 입술을 붙여 온다. 나는 손으로 그의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항상...
예민하다면 예민한 편에 속하는 성격들이 유독 무딘 부분이 있었다. 그렇게 비슷한 사람들이라 우린 오래 큰 마찰 없이 함께할 수 있었다.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뒤늦게 아팠다. 아프지 않을리가 없었다. 민재가 아니면 안 된다며 유난을 떤 적은 없었다. 가끔 민재가 귀엽다고 생각하면서, 이런 점이 좋다고 생각만 하면서 나는 오는 사람 안 막고 다 만나고 다...
민재는 인상을 찡그린다. 나를 빤히 본다. 당황한 건지 화가 난건지 모르겠다. 그 앞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진다. 내가 품고있는 감정과, 그런 나와 함께하는 민재에 대해, 나는 그 어떤 낙관적인 전망도 가져본 적이 없다. 두려웠던 것 같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당연히 그 이유 때문에 민재와 함께 했던 것은 아니었다. 싫어할 수 없으니 좋아했을...
대학 동기들과 오랜만의 술자리였다. 술자리는 별로 즐기지 않는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차를 가지고 왔기에 술은 마시지 않겠다 했더니 서운하다는 반응이 돌아온다. 서운할 일인지 모르겠다. 나는 항상 사람들 무리에서 톡 불거져 있다. 어차피 각자의 인생을 살아갈 남인데 왜 시간과 감정을 소모해 가면서 인간 관계를 관리해야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직한 회사의 장점이 한 가지 생각났다. 출근시간이 자유롭다는 것. 비록 퇴근 시간은 자유롭지 않지만 출근의 부담이 없다는 것. 몇 달간 머리를 굴리며 고민한 결과 치곤 조금 초라한 감이 있지만, 나같은 야행성 인간에겐 남다른 장점이다. 게다가 능력껏 한다면 정해진 근무 시간이 끝난 후에 퇴근할 수 있는 점도 좋았다. 그러나 나는 지금 하늘이 새까만 밤이 ...
평소답지 않게 집이 엉망이다. 주로 집에서 일을 하는 민재는 먼지가 쌓이기도 전에 먼지를 털어 내고 청소하는 것을 하루 일과의 중요한 부분으로 삼고 있었다. 내가 출근 준비를 하며 분주히 어질러 놓고 나간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집 안에서 나는 그 어떤 위화감을 느꼈다. 약 상자가 어지러이 흩어진 주방을 지나 민재의 방으로 들어섰다. 어수선한 방 안 침대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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